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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휩쓸려 사라진 건축Issue & Opinion 2023. 1. 12. 01:12
부제 : 서울 통일문화센터의 건립취소 소식을 접하고.
2020년, 서울의 한 설계공모에 참가했었다.
프로젝트 명은 (가칭)통일문화센터 건립 설계공모.
총 127개 팀이 참가등록을 했고, 그 중 나를 포함한 48개의 작품이 제출되었다.
결과는 낙선.
하지만, 당선안을 보니 결과를 납득할 수 있었다.
좋은 아이디어로 잘 풀어낸 계획안이란 느낌을 받았고,
'지어지면 한 번 가봐야지.' 하고는 한동안 기억속에서 잊혀져 있었다.
오늘, 옛 자료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통일문화센터'라는 옛 프로젝트 이름에 문득 궁금해졌고,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지금쯤이면 다 지어졌겠거니 하며 지도에서 로드뷰를 먼저 보게되었다.
준공은 커녕 기존건물도 철거되지 않은 채, 3년 전 그대로였다.
왜 아직도 안지어졌을까
검색을 통해 발견한 기사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시 통일문화센터 건립 취소…시의회 '타당성 부족'
2022. 12. 08. 세계일보.
제목만 봐도 건립이 왜 취소된 것인지 속사정을 예상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기획된 2016년은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기였고,
당시 서울시 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110석 중 98석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 1위.
현재는 반대로 국민의힘이 압도적 1위를 차지한 상황이다.
남북관계도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공사비 증액을 요청한 '통일'문화센터.
예산안 부결은 어찌보면 뻔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공사비 증액 신청은 통일문화센터만의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사실 공공건축물의 공사비는 항상 부족하다.
애초에 과거 공사비 자료를 통해 예산을 책정하거니와,
기획에서 착공까지 몇년의 시간차로 인해
그 기간의 물가상승과 날로 강화되는 법규(에너지 등) 적용으로
설계가 완료되는 시점에서는 거의 무조건 공사비 조정이 필요하다.
즉 공사비 증액요청을 했다는건, 설계를 마쳤다는 뜻이다.
설계공모 당선작 발표 후,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원래 설정된 설계기간은 7개월이었다.
그보다 3배가 넘게 길어진 설계기간.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리고 지어지지 않는 프로젝트가 되었을때
얼마나 힘이 빠졌을까.
통일문화센터 건립 취소는
6년전, 처음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사람들의 노력,
2년전, 설계공모에 참여한 48개 팀들의 2달간의 노력,
2년간,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노력한 건축가와 협력업체들(구조, 토목, 조경, 전기/통신, 기계, 소방)의 노력
공공건축물이라면, 특시 서울시라면 여러번 넘어야하는 각종 심의와 인증과정에서의 논의와 협의
이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무(無)로 돌리는 일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화마가 모든 것들을 태워버린듯한, 허탈한 느낌.
시의회의 결정이 지금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남북관계가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통일문화센터'가 아닌, '문화센터' 였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미 빛을 잃어버린 질문들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건축을 붙잡아 보지만,
잡히는 건 무기력하고 허탈한 마음뿐이다.
설계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시대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건축을 보는것이
활짝 피지 못하고 져버린 어린 꽃을 마주한듯,
애달프고 아쉽다.
▼통일문화센터 당선작
▼통일문화센터 건립취소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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